3장

1μοως α γυνακες, ποτασσμεναι τοῖς δοις νδρσιν, να κα ε τινες πειθοσιν τ λγ, δι τῆς τν γυναικν ναστροφῆς νευ λγου κερδηθσονται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개역개정)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그들 또한 말없이 아내의 행실을 통해 구원을 얻게하려 함이니』(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말하는 남편과 아내는 모두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지만,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만,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베필이다. 돕는 의미는 원래 하나였는데, 둘로 나누어졌으므로 둘이 하나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돌아가는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내(하나님을 떠난 자)가 남편(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순종하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패스(ἀναστροφς)는 위에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의 행실, 즉 아나스로로패스는 남편(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내는 이와 같은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남편)에게 설명을 해주고, 자기 남편도 하나님을 떠난 자였는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므로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아마 이전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아내가 거듭난 후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깨닫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순종하므로, 남편도 그 이치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케르데데손타이(κερδηθήσονται)는 그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라는 의미다.

2-4ποπτεσαντες τν ν φβ γνν ναστροφν μν. ν στω οχ ξωθεν μπλοκς τριχν κα περιθσεως χρυσων νδσεως ματων κσμος, λλ’ κρυπτς τς καρδας νθρωπος ν τ φθρτ το πραως κα συχου πνεματος στιν νπιον το θεο πολυτελς.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개역개정)

『너희의 경외함 안에 있는 정숙한 행실을 그들이 보느니라 너희가 단장하는 것은 머리를 꾸미고 금으로 치장하며 장식의 외투를 입는 그런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고 온유하며 조용한 영으로 할지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남편은 아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과 아나스트로펜(ἀναστροφν) 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펜은 거듭난 자의 모습이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의 변화된 모습이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투 프라에오스 카이 헤쉬키우 프뉴마토스πραέως κα συχίου πνεύματος)』에서, 프라에오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자가 되고, 프뉴마토스는 심령이 아니라 영이다. 아내(하나님을 떠난 자)가 영으로서 자기 자리를 지킬 때(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이 그를 값지게 보시는 것이다.  

5-6 οτως γρ ποτε κα α γιαι γυνακες α λπζουσαι ες θεν κσμουν αυτς ποτασσμεναι τος δοις νδρσιν, ς Σρρα πκουσεν τ βραμ κριον ατν καλοσα ς γενθητε τκνα γαθοποιοσαι κα μ φοβομεναι μηδεμαν πτησιν.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개역개정)

『이전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어떤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사라의 자녀들이 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휘포타쏘메나이(ὑποτασσόμεναι)는 복종하게 되며 라는 의미다. 에코스모운(ἐκόσμουν)은 단장하다 라는 의미다.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토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휘페쿠센πήκουσεν)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자녀가 된 것이니라』부녀들과 사라가 등장한다. 거룩한 부녀들은 남편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을 의미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님이라 불렀던 것은 아브라함을 그리스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같이 되는 100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두고, 죽은 자 같은 그의 남편 가운데서 새생명(이삭)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라는 선을 행하고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었으며, 아브라함이 이를 행할 때,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녀도 부활을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너희는 선을 행하고(아가도포이우사이γαθοποιοσαι), 두려운(포부메나이φοβούμεναι) 일에 놀라지(프토에신πτόησιν) 않으면』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사라가 선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때 자식을 준다고 했는데, 아브라함만 믿고, 사라가 믿지 않았으면, 그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사라도 함께 믿으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정말 사라가 90세가 되어 임신을 했는데,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한다면, 아내들은 사랑의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선을 행하는 것은 복음의 씨를 전파하는 일다.

7 Ο νδρες μοως, συνοικοντες κατ γνσιν ς σθενεστρ σκεει τ γυναικείῳ, πονμοντες τιμν ς κα συγκληρονμοις χριτος ζως ες τ μ γκπτεσθαι τς προσευχς μν.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남편들아 이와 같이 그녀가 약한 그릇과 같은 여자라는 것을 아는 지식으로 아내와 함께 살고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서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 받지 아니하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그노신(γνσιν)은 체험으로 알게되는 것(히브리어 야다와 같다) 남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아내를 대하라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 기도가 되는 것이다.

8-9 Τ δ τλος πντες μφρονες, συμπαθες, φιλδελφοι, εσπλαγχνοι, ταπεινφρονες, μ ποδιδντες κακν ντ κακο λοιδοραν ντ λοιδορας, τοναντον δ ελογοντες, τι ες τοτο κλθητε, να ελογαν κληρονομσητε.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끝으로 너희는 다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동정하며 형제로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행하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반대로 축복하라 이런 일을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줄 아나니 이것은 너희가 복을 상속받게 하려 함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유스플랑크노이σπλαγχνοι)는 동정하다는 의미이고, 쉼파데이스 συμπαθες 는 불쌍히 여기다는 의미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형제는 영적 공동체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사랑의 응대였다. 선으로 악을 이기신 것이다. 사랑으로 미움을 덮으신 것이다. 박해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로 흩어져, 떠돌이 신세가 된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가정을 세우라고 권면했다. 그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10-11 γρ θλων ζων γαπν κα δεν μρας γαθς παυστω τν γλσσαν π κακο κα χελη το μ λαλσαι δλον,κκλιντω δ π κακο κα ποιηστω γαθν, ζητηστω ερνην κα διωξτω ατν·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개역개정)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들을 보고자 하는 자는 악으로부터 자기 혀를 지키게 하고 자기 입술을 지켜 기만으로 말하지 말며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르라』(헬라어 번역성경)

좋은 날은 구원을 얻는 날이다. 아가다스(ἀγαθς)는 선을 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복음을 씨를 퍼뜨리는 일이다. 입술은 화살모양이다. 입술로 거짓을 말하거나 악한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활을 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활을 통제하는 일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의 법 아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2τι φθαλμο κυρου π δικαους κα τα ατο ες δησιν ατν, πρσωπον δ κυρου π ποιοντας κακ.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개역개정)

『주의 눈은 의인들 위에 있으며 그 분의 귀는 그들의 기도를 향하고 있으되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의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오늘날 이신칭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나,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시켜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인이라 칭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자들 중에 의인은 하나도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의인이라 칭함을 얻는다. 그러나 의인이라 칭함을 얻어도,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13 Κα τς κακσων μς, ἐὰν το γαθο ζηλωτα γνησθε;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개역개정)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헬라어 번역성경)

선을 행하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로 아가두(ἀγαθο)는 사역으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에게 십자가를 심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14λλ’ ε κα πσχοιτε δι δικαιοσνην, μακριοι. τν δ φβον ατν μ φοβηθτε μηδ ταραχθτε,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개역개정)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복이 있는 자니 그들의 위협에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지니』(헬라어 번역성경)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여려움을 겪는 것은 복이라는 것이다. 파스코이테(πάσχοιτε)는 고난이라기 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여정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고 이동하는데, 여러가지 제약을 받았다.

15 κριον δ τν Χριστν γισατε ν τας καρδαις μν, τοιμοι ε πρς πολογαν παντ τ ατοντι μς λγον περ τς ν μν λπδος,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개역개정)

『너희 마음 속에 임재하시는 거룩하신 주 그리스도와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헬라어 번역성경)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소망을 묻는다면, 항상 준비해야만 한다. 소망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원래 인간 속에 있는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있다가 쫒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처럼 다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라우테토스는 겸손한 자세로, 포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16λλ μετ πρατητος κα φβου, συνεδησιν χοντες γαθν, να ν καταλαλεσθε καταισχυνθσιν ο πηρεζοντες μν τν γαθν ν Χριστ ναστροφν.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선한 양심은 남을 돕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보다, 복음을 전하므로서 죽었던 영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아가덴(ἀγαθήν)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선행으로 번역된 것의 원어는『텐 아가덴 텐 크리스토 아나스트로펜 τν γαθν ν Χριστ ναστροφήν』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을 위한 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비방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17 κρεττον γρ γαθοποιοντας, ε θλοι τ θλημα το θεο, πσχειν κακοποιοντας.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개역개정)

『만일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너희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선을 행함으로 받는 것이 나으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은 세상을 위해 힘든 일을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18τι κα Χριστς παξ περ μαρτιν παθεν, δκαιος πρ δκων, να μς προσαγγ τ θε θανατωθες μν σαρκ, ζοποιηθες δ πνεματι·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개역개정)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에 의해서 살아나셔서 너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하심이라』 (헬라어 번역성경)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는 육의 몸은 죽고,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생명으로 살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ὑμς)를 위해 이렇게 인도하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복음을 전하므로서 이웃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의미다.

19 ν κα τος ν φυλακ πνεμασιν πορευθες κρυξεν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개역개정)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갇혀있는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셨는데』(헬라어 번역성경)

(ᾧ)는 성령을 의미한다. 프뉴마신(πνεύμασιν)은 영들이다. 옥은 자유함을 입은 영이 아니라, 갇혀있는 영들을 의미한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영이 흙이라는 옥에 갇혀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들의 마음에 들어가서, 갇혀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는 것이다.

20πειθσασν ποτε, τε πεξεδχετο το θεο μακροθυμα ν μραις Νε κατασκευαζομνης κιβωτο ες ν λγοι, τοτ’ στιν κτ ψυχα, διεσθησαν δι’ δατος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개역개정)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던 자들에게 한번 오래 참고 기다리셨는데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가 몇 안되니 곧 여덟 혼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프슈카이(ψυχαί)는 혼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이 결합되어 혼이 되었다. 혼은 살아있는 생명체(사람)를 의미하며, 영은 육체 속에 갇힌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육체 속에 갇힌 영들은 마치 노아시대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한 자들은 노아의 시대에 죽은 자들과 다름없는 자들인 것이다. 구원받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노아시대도 노아의 형제, 친척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여인의 후손에 대한 씨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비유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한 관계로 세상을 심판하셨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 7명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노아가 120년 동안 외친 것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로 심판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홍수가 내리기 5년 전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셨다. (성경에는 없으나 야살의 책에 기록됨) 노아가 120년을 방주를 지었던 것이 아니라, 120년간 회개를 외친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라고 외친 것이다. 방주를 다 짓고 홍수가 나므로 비로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것이다.

21 κα μς νττυπον νν σζει βπτισμα, ο σαρκς πθεσις ῥύπου λλ συνειδσεως γαθς περτημα ες θεν, δι’ ναστσεως ησο Χριστο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개역개정)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또한 너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요구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 물을 적시나, 원래 침례는 물에 잠기는 의식을 한다. 물에서 죽었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물 밖으로 올라오면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6 4절에서 처럼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세례는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세례는 먼저 죽음을 표현한다. 그래서 노아시대의 믿지 못한 자를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 것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죽음의 세례가 된다. 그리고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다시 태어나는 자들로 표현된다.

교회에서 하는 의식을 마음으로 확정하는 자는 하나님이 성도를 성령으로 거듭나게(다시 태어나게) 해주신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다시 태어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성령을 물같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세례다. 성령세례는 이제 나가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복음을 전하므로서 죽었던 영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것이 주 목적이다. 요한복음 6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말한 내용을 생각해야만 한다.

22ς στιν ν δεξι το θεο πορευθες ες ορανν ποταγντων ατ γγλων κα ξουσιν κα δυνμεων.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개역개정)

『그는 하늘로 들어가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다 복종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육체에 갇혀 죽었던 영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었던 영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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