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2절Ἀποθέμενοι οὖν πᾶσαν κακίαν καὶ πάντα δόλον καὶ ὑποκρίσεις καὶ φθόνους καὶ πάσας καταλαλιὰς ὡς ἀρτιγέννητα βρέφη τὸ λογικὸν ἄδολον γάλα ἐπιποθήσατε, ἵνα ἐν αὐτῷ αὐξηθῆτε εἰς σωτηρίαν,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 젖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상속자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로기콘(λογικὸν)은 로고스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말씀에서 나온 젖(생명)이다. 에피포데사테(ἐπιποθήσατε)는 갈망하다라는 의미다. 소테리안(σωτηρίαν)은 구원으로 번역되었지만, 문맥상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에 이른다는 의미다. 결국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되도록 순전하고 생명이신 하나님 말씀을 먹으라는 것이다.
3-5절 εἰ ἐγεύσασθε ὅτι χρηστὸς ὁ κύριος. πρὸς ὃν προσερχόμενοι λίθον ζῶντα ὑπὸ ἀνθρώπων μὲν ἀποδεδοκιμασμένον, παρὰ δὲ θεῷ ἐκλεκτὸν ἔντιμον,καὶ αὐτοὶ ὡς λίθοι ζῶντες οἰκοδομεῖσθε οἶκος πνευματικὸς εἰς ἱεράτευμα ἅγιον ἀνενέγκαι πνευματικὰς θυσίας εὐπροσδέκτους θεῷ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개역개정)
『너희가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참으로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함을 받은 돌 곧 보배롭고 살아있는 돌이신 그 분께 나아와 너희도 살아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돌은 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하는 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로 지어졌다. 그런데, 그 돌은 생명이 없는 돌이다. 생명이 있는 돌이 산 돌이다. 생명이 있는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도 안에도 성령이 임하시는 성전이 있다. 그리고 성도들 간의 공동체가
교회로서 성전이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 간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산 돌과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는 것이다. 멘 (μὲ)은 참으로 라는 말이다. 크레스토스(χρηστὸς)는 은혜로우심이다. 프뉴마티카스(πνευματικὰς)는 영적인, 뒤시아스(θυσίας)는 제물이다. 성도는 자신을 영적 제물로 드리는 자가 된다. 거룩한 산 제물인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된다. 만인제사장이라는 말은 성도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목회자만
제사장이고, 신도들은 제사장을 따르는 자라는 인식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그런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구약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에 대해서 두가지를 핵심 과제로 여겼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과 만인제사장을 강조했다.
6절 διότι περιέχει ἐν γραφῇ· ἰδοὺ τίθημι ἐν Σιὼν λίθον ἀκρογωνιαῖον ἐκλεκτὸν ἔντιμον, καὶ ὁ πιστεύων ἐπ’ αὐτῷ οὐ μὴ καταισχυνθῇ.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개역개정)
『그런즉 성경기록에도 있노라,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으뜸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조금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아크로고니아이온(ἀκρογωνιαῖον)은 으뜸(최고의) 모퉁이 돌이다. 다윗성이 있던 곳이 시온이다. 일반적으로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데, 베드로는 성전되는
성도를 시온에 둔다고 말한 것이다. 다윗의 믿음과 연결시키려고 한 것이다.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있으며,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맛나가 든 항아리가 있었다. 그리고 언약궤 위에는 두 천사 모양의 것(그룹:케르빔)이 있다. 두 천사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데, 시은좌(은혜의 보좌)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을 보호하는 존재로 여기는
정도였다. 심지어 엘리 대제사장 시절 언약궤를 전쟁의 방어막으로 사용하다가 적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행했는데, 언약궤를 빼앗은 적군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돌려보내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언약궤를 소중하게 여긴 자가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언약궤가 돌아올 때 춤을 추고 직접 영접한 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언약궤를 모시고, 주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시온에 두었다는 말은 시온성에 두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말씀을 사모하고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에 나가기를 원하는 자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다.
7-8절ὑμῖν οὖν ἡ τιμὴ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ἀπιστοῦσιν δὲ λίθος ὃν ἀπεδοκίμασαν οἱ οἰκοδομοῦντες, οὗτος ἐγενήθη εἰς κεφαλὴν γωνίας καὶ λίθος προσκόμματος καὶ πέτρα σκανδάλου· οἳ προσκόπτουσιν τῷ λόγῳ ἀπειθοῦντες εἰς ὃ καὶ ἐτέθησαν.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개역개정)
『그러므로 그 분께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로우시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이 되었느니라 바로 그 돌이 믿는 자에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렇게 정해진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말씀은 톤 로곤(τῷ λόγῳ)이다. 톤
로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에테데산(ἐτέθησαν)은 그들도 정해졌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다. 미리
예정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믿는
자는 모퉁이 머릿돌이 보배로운 말씀(그리스도)이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냥 하나의 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미상으로는
『그 돌이 (믿는 자에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로서 (믿는 자에게)라는 것이 들어있다.
토 로고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으로 여긴다. 그냥 성경 말씀을 읽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마음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9절ὑμεῖς δὲ γένος ἐκλεκτόν, βασίλειον ἱεράτευμα, ἔθνος ἅγιον, λαὸ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ὅπως τὰς ἀρετὰς ἐξαγγείλητε τοῦ ἐκ σκότους ὑμᾶς καλέσαντος εἰς τὸ θαυμαστὸν αὐτοῦ φῶς·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그러나 너희는 택해진 족속이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게노스(γένος)는 민족 국가를 의미한다. 바실레이온은 왕가(royal)라는
표현이다. 왕가의 제사장은 다윗과 같이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에드노스 하기온(ἔθνος ἅγιον)은 거룩한 나라다. 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은 그의 소유가 되는 백성이다. 아레타스 (ἀρετὰς)는 아름다운 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네가지로 말한다. 택하신 족속, 왕가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다. 동물을 죽여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므로 제사장이 죄인의 대리자로,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주시는
은혜의 중보자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갔으며, 그 분이 또한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말한 이유는 어두움(사탄:죄의
근원)에서 불러내고, 기이한 빛(하나님의 의)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10절 οἵ ποτε οὐ λαός, νῦν δὲ λαὸς θεοῦ, οἱ οὐκ ἠλεημένοι, νῦν δὲ ἐλεηθέντες.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개역개정)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받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받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율법을 지키려고 한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인
것이다.
11절Ἀγαπητοί, παρακαλῶ ὡς παροίκους καὶ παρεπιδήμους ἀπέχεσθαι τῶν σαρκικῶν ἐπιθυμιῶν αἵτινες στρατεύονται κατὰ τῆς ψυχῆς·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개역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신의 열정들을 삼가라』(헬라어 번역성경)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들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세상이 마치 광야 같은 삶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이면적으로는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나그네로 사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파로이쿠스(παροίκους)는 외국인, 여행자(순례자) 등의 의미다. 사르키콘(σαρκικῶν)은 육체가 아니라, 육신(자기의 의)을 의미한다. 에피뒤미온 (ἐπιθυμιῶν)은 열정이다. 종교심에 불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괴롭혔던
율법주의적인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쉬케스(ψυχῆς)는 혼(soul)이다.
육신의 종교심(자기의 의)은 혼을 더럽히며, 결국 영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혼을 깨끗하게
해야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옛것은
죽고, 새로 다시 태어나야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새로
다시 태어나는 혼을 신령한 영의 몸이라고 한다. 이전의 죽기 전의 혼을 육의 몸이라고 표현된다. 왜 혼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가? 그 혼 속에는 옛사람(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우상)를 이루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12절 τὴν ἀναστροφὴν ὑμῶν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ν ἔχοντες καλήν, ἵνα ἐν ᾧ καταλαλοῦσιν ὑμῶν ὡς κακοποιῶν ἐκ τῶν καλῶν ἔργων ἐποπτεύοντες δοξάσωσιν τὸν θεὸν ἐν ἡμέρᾳ ἐπισκοπῆς.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는 가치있는 것을 행하라 그들이 너희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자기들이 너희의 가치있는 행위들을
돌아보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칼렌(καλήν)은 가치있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펜(ἀναστροφὴν)은 『위에서 변화된』것이다. 위에서 변화된 것을
가치있게 가지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땅에서 가치있는 삶을 산다. 결국 이 땅에서는 나그네지만 본향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치있는 삶이다. 그래서 전하는
자들이나, 복음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13-15절Ὑποτάγητε πάσῃ ἀνθρωπίνῃ κτίσει διὰ τὸν κύριον, εἴτε βασιλεῖ ὡς ὑπερέχοντι εἴτε ἡγεμόσιν ὡς δι’ αὐτοῦ πεμπομένοις εἰς ἐκδίκησιν κακοποιῶν, ἔπαινον δὲ ἀγαθοποιῶν, ὅτι οὕτως ἐστὶν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ἀγαθοποιοῦντας φιμοῦν τὴν τῶν ἀφρόνων ἀνθρώπων ἀγνωσίαν,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개역개정)
『너희는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 분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총독들에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너희가 잘 행함으로 무식한 말을 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개역개정)
휘포타게테(Ὑποτάγητε)는 수동형으로 복종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규례(κτίσει)는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규례로 여겨져야 한다. 그래서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왕에게 복종되어지라는 것이다. 선행하는 자(ἀγαθοποιοῦντας)는 질서대로 잘 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세상의 왕은 사탄을 의미한다. 사탄도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일정기간 부여받았다. 육체가 있는 이상 사탄으로부터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에 순응하기 위함이다.
16절ὡς ἐλεύθεροι καὶ μὴ ὡς ἐπικάλυμμα ἔχοντες τῆς κακίας τὴν ἐλευθερίαν ἀλλ’ ὡς θεοῦ δοῦλοι.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개역개정)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 행하라』(헬라어
번역성경)
엘류데로이(ἐλεύθεροι)는 세상에서 자유한 자라는 의미다. 하나님 백성이 죄로부터 자유한 자라고 생각해서, 자유하기 때문에, 이제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 악을 저지르는 그런 짓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자기를 쳐서 삶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17-18절 πάντας τιμήσατε, τὴν ἀδελφότητα ἀγαπᾶτε, τὸν θεὸν φοβεῖσθε, τὸν βασιλέα τιμᾶτε. Οἱ οἰκέται ὑποτασσόμενοι ἐν παντὶ φόβῳ τοῖς δεσπόταις, οὐ μόνον τοῖς ἀγαθοῖς καὶ ἐπιεικέσιν ἀλλὰ καὶ τοῖς σκολιοῖς.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개역개정)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경하며 사원들아 모든 두려움으로 너희 주인들에게 복종되어져야
하고 선하고 부드러운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헬라어 번역성경)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는 티메사테(τιμήσατε)는 어원은 티메(τιμή) 복수형 명령어로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자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라는 말이다. 티마테(τιμᾶτε)는 2인칭 복수로서 너희는 존경한다는 현재시제이다. 아델포테타(ἀδελφότητα)는 같은 성도인 형제를 의미한다. 바실레아(βασιλέα)는 하나님이신 왕을 의미한다. 휘포타쏘메노이(ὑποτασσόμενοι)는 복종되어지는 것이다.
19-21절 τοῦτο γὰρ χάρις, εἰ διὰ συνείδησιν θεοῦ ὑποφέρει τις λύπας πάσχων ἀδίκως.ποῖον γὰρ κλέος, εἰ ἁμαρτάνοντες καὶ κολαφιζόμενοι ὑπομενεῖτε; ἀλλ’ εἰ ἀγαθοποιοῦντες καὶ πάσχοντες ὑπομενεῖτε, τοῦτο χάρις παρὰ θεῷ. εἰς τοῦτο γὰρ ἐκλήθητε, ὅτι καὶ Χριστὸς ἔπαθεν ὑπὲρ ὑμῶν ὑμῖν ὑπολιμπάνων ὑπογραμμόν, ἵνα ἐπακολουθήσητε τοῖς ἴχνεσιν αὐτοῦ,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사람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슬픔을 참고 견디면 이것은 받아질 것이나 너희가 너희 잘못으로 인하여 매를
맞고 참으면 그것이 무슨 믿음직스러운 것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가 잘 행하고도 그것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만한
것이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너희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 자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받은 고난을 생각하면서 참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난을 통해서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이다.
22-24절ὃς ἁμαρτίαν οὐκ ἐποίησεν οὐδὲ εὑρέθη δόλος ἐν τῷ στόματι αὐτοῦ, ὃς λοιδορούμενος οὐκ ἀντελοιδόρει,
πάσχων οὐκ ἠπείλει, παρεδίδου δὲ τῷ κρίνοντι δικαίως ὃς τὰς ἁμαρτίας ἡμῶν αὐτὸς ἀνήνεγκεν ἐν τῷ σώματι αὐτοῦ ἐπὶ τὸ ξύλον, ἵνα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ἀπογενόμενοι τῇ δικαιοσύνῃ ζήσωμεν, οὗ τῷ μώλωπι ἰάθητε.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개역개정)
『그 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넘기시고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 안에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 순종은 모든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하는 믿음을 가진 자를 죄에서 건지시겠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믿음은 바로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믿음인 것이다.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의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그래서 교회에서 치유사역을 강조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병을 치유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이면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영적으로 병든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적으로 회복됨을 말해주고 있다.
25절ἦτε γὰρ ὡς πρόβατα πλανώμενοι, ἀλλ’ ἐπεστράφητε νῦν ἐπὶ τὸν ποιμένα καὶ ἐπίσκοπον τῶν ψυχῶν ὑμῶν.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개역개정)
『너희가 전에는 길 잃은 양 같았으나 지금은 너희 혼의 목자요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프쉬콘(ψυχῶν)은 혼이다. 잃어버린 양과 목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양들은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다. 하나님을 떠난 영들은
탐욕이라는 우상으로 오염된 혼의 결과로 영이 죽어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혼 속에서 되살아난
영들이 목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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