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ΠΕΤΡΟΥ ΕΠΙΣΤΟΛΗ ΠΡΩΤΗ 베드로전서

 

1

 

1-2Πέτρος ἀπόστολ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κλεκτοῖς παρεπιδήμοις διασπορᾶς Πόντου, Γαλατίας, Καππαδοκίας, Ἀσίας καὶ Βιθυνίας κατὰ πρόγνωσιν θεοῦ πατρὸς ἐν ἁγιασμῷ πνεύματος εἰς ὑπακοὴν καὶ ῥαντισμὸν αἵ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πληθυνθείη.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개역개정)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나그네는 소아시아 지역 등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들이다. 프로그노신(πρόγνωσιν)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의미) 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는 소유격으로『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는 자는 순종(휘파코엔 πακον)(카이:접속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란티스몬αντισμν) 속으로 들어간다.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순종이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말은 피뿌림과 동격인 것이다. 물론 카이(접속사 그리고) 라는 말은 동격을 의미할 때가 있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를 뿌려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택하심을 얻는 자들이다.

3-4Εὐλογητὸς ὁ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ὁ κατὰ τὸ πολὺ αὐτοῦ ἔλεος ἀναγεννήσας ἡμᾶς εἰς ἐλπίδα ζῶσαν δι’ ἀναστά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κ νεκρῶν, εἰς κληρονομίαν ἄφθαρτον καὶ ἀμίαντον καὶ ἀμάραντον τετηρημένην ἐν οὐρανοῖς εἰς ὑμᾶς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개역개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 분께서 자신의 크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하늘에 예비된 상속을 받게 하셨으니』(헬라어 번역성경)

아나겐네사스(ἀναγεννήσας) 는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난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산 소망을 갖게된다. 그런데 소망을 갖게되는 방법은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나스타세오스(ἀναστάσεως) 는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그들도 영적 부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래서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상속을 잇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인 것이다.

5 τοὺς ἐν δυνάμει θεοῦ φρουρουμένους διὰ πίστεως εἰς σωτηρίαν ἑτοίμην ἀποκαλυφθῆναι ἐν καιρῷ ἐσχάτῳ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개역개정)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기로 준비된 구원을 위하여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엔 카이로 에스카토(ἐν καιρ σχάτῳ) 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에게 구원을 확정하시는 그 때 라는 의미다. 구원은 성령세례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구원의 의미를 나타내려고 한 표현이다. 이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믿음에 대한 예로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으로 설명된다. 출애굽을 할 당시 백성들은 열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열명은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하고 온 백성이 그 말을 믿고 통곡하며 밤새 울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철병거를 가진 아낙자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인 것이다. 말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의 몸(옛사람:)이 죽었음을 믿지만, 현실적으로 육체가 있으므로 고난과 시련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를 보호하신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광야 사십년을 보내게 했다.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애굽할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을 훈련시키고, 보호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 앞에서 통곡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19세이하의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가나안에서 땅을 유업으로 받은 것이다.

신도들도 예수믿고 교회다닌다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을 때, 즉 거듭날 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6ἐν ᾧ ἀγαλλιᾶσθε ὀλίγον ἄρτι, εἰ δέον ἐστίν, λυπηθέντας ἐν ποικίλοις πειρασμοῖς,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개역개정)

『비록 지금은 너희가 여러가지 유혹으로 인하여 잠시 근심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상황이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나니』(헬라어 번역성경)

페이라스모이스(πειρασμος)는 죄의 유혹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유혹이다. 유혹이 왔지만 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 때문에 오히려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더 강하게 되는 것이다.

7ἵνα τὸ δοκίμιον ὑμῶν τῆς πίστεως πολυτιμότερον χρυσίου τοῦ ἀπολλυμένου, διὰ πυρὸς δὲ δοκιμαζομένου εὑρεθῇ εἰς ἔπαινον καὶ δόξαν καὶ τιμὴν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개역개정)

너희 믿음의 진가는 정제를 통해 불로 단련하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헬라어 번역 성경)

아포칼륖세이(ἀποκαλύψει)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라, 계시다. 거듭남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거듭남이 성령세례와 동격은 아니다.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며,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이게 구원의 성령이다. 내주하시는 성령이신 것이다.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성령 충만이다. 이 성령은 보혜사 성령으로 성도의 머리 위에서 역사하신다. 성도가 말씀을 전할 때 힘을 주시고 증거하게 하신다.

거듭난 자에게 성령 세례가 동시에 오기 때문에 신도들은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혼동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성령 충만으로서, 그러나 생활 속에서 어려움이 오고, 믿음이 약화되고 할 때, 보혜사 성령은 떠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성령을 간절히 구하면 다시 오시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항상 성령과 대화를 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믿음을 보고계신다.

8-9 ὃν οὐκ ἰδόντες ἀγαπᾶτε, εἰς ὃν ἄρτι μὴ ὁρῶντες, πιστεύοντες δὲ ἀγαλλιᾶσθε χαρᾷ ἀνεκλαλήτῳ καὶ δεδοξασμένῃ κομιζόμενοι τὸ τέλος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 σωτηρίαν ψυχῶν.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개역개정)

『너희가 그 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 분을 보지 못하나 믿으며 영광이 가득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나니 이는 너희가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자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다. 프쉬콘(ψυχν)은 혼을 의미한다.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육은 부모로부터 온 것이며, 혼은 육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이다. 혼에는 탐욕이라는 옛사람이 숨어있다. 그래서 탐욕이 숨어있는 혼이 영을 죽이는 것이다. 혼에서 탐욕을 제거하면, 영은 하늘의 생명을 받아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혼에서 탐욕을 인간은 스스로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연합이다. 그래서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혼의 마음에 탐욕이 제거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게 영지주의 자들은 영에 신성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신성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과 관계를 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10-11 περὶ ἧς σωτηρίας ἐξεζήτησαν καὶ ἐξηραύνησαν προφῆται οἱ περὶ τῆς εἰς ὑμᾶς χάριτος προφητεύσαντες ἐραυνῶντες εἰς τίνα ἢ ποῖον καιρὸν ἐδήλου τὸ ἐν αὐτοῖς πνεῦμα Χριστοῦ προμαρτυρόμενον τὰ εἰς Χριστὸν παθήματα καὶ τὰς μετὰ ταῦτα δόξας.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개역개정)

『이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살펴서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주셨는지 연구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연구하던 예언자들은 구약에서 말하는 선지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을 것을 미리 예언했다는 것이다.

12 οἷς ἀπεκαλύφθη ὅτι οὐχ ἑαυτοῖς, ὑμῖν δὲ διηκόνουν αὐτὰ ἃ νῦν ἀνηγγέλη ὑμῖν διὰ τῶν εὐαγγελισαμένων ὑμᾶς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ἀποσταλέντι ἀπ’ οὐρανοῦ, εἰς ἃ ἐπιθυμοῦσιν ἄγγελοι παρακύψαι.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개역개정)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것들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수행하였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므로, 구약의 선지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듣게 되는 것이다.

13 Διὸ ἀναζωσάμενοι τὰς ὀσφύας τῆς διανοίας ὑμῶν νήφοντες τελείως ἐλπίσατε ἐπὶ τὴν φερομένην ὑμῖν χάριν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개역개정)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아포칼륍세이(ἀποκαλύψει)는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다. 계시는 성도의 마음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만나는 것이다. 주실 은혜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는 것이다.

14-15ὡς τέκνα ὑπακοῆς μὴ συσχηματιζόμενοι ταῖς πρότερον ἐν τῇ ἀγνοίᾳ ὑμῶν ἐπιθυμίαις, ἀλλὰ κατὰ τὸν καλέσαντα ὑμᾶς ἅγιον καὶ αὐτοὶ ἅγιοι ἐν πάσῃ ἀναστροφῇ γενήθητε,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개역개정)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할 때의 욕구에 스스로 열정하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순종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는 동격이다. 순종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행실에 거룩한 자라는 것은 성도가 어떤 성결한 삶을 통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순종이고, 거룩한 행실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 서로 하나가 되어, 음성을 듣고 서로 말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모든 것이다. 거룩하게 되려면 무조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조건은 죄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대제사장이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고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16 διότι γέγραπται · ἅγιοι ἔσεσθε, ὅτι ἐγὼ ἅγιος.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될지니라 하셨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이 거룩한데, 어떻게 인간이 거룩해질 수 있는가? 반문할지 모르나, 거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불 태우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거룩한 자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요,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이신데, 거룩하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는 하나님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 자체가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두 거룩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룩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나님은 거룩 그 자체인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διοτι γεγραπται αγιοι γενεσθε οτι εγω αγιος ειμι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이니 너희들은 거룩으로 태어날지니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διτι γγραπται · γιοι σεσθε, τι γ γιος.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이 될지니라 하셨느니라

ειμι 라는 동사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며, 문법적으로는 현재시제, 1인칭, 단수에 해당한다. εγω αγιος ειμι는 『나는 거룩이다』 라는 의미다. 그런데, εγω αγιος 라고 했을 때 be동사가 없으므로, αγιος가 명사를 수식할 때는 『거룩한 나』 라는 의미가 된다. 나는 거룩이다 라는 문장과 나는 거룩하다 라는 문장은 의미가 다르다. 나는 거룩이다. 라는 문장은 나와 거룩은 동일시되지만, 나는 거룩하다 라는 한글 문장은 나의 상태를 표현해주는 것이다. 즉 거룩하다는 말은 보어로서 형용사적인 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εγω αγιος ειμι에서 αγιος는 보어가 아니라 주어와 동격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ειμι (be동사)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룩하다라는 보어적 형용사적인 번역이 아니라 명사적으로 나는 거룩이다 라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거룩 자체라는 것이다. αγιος가 서술적으로 표현될 때는 αγιος εγω로 되어 나는 거룩하다 라고 될 수 있다. ειμι 없을 경우에는 거룩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되는 것이다.

σεσθε(2인칭 복수로서 영어의 are에 해당) ~이다 라는 의미이고,  γενεσθε는 γγνομαι(태어나다, 생산되다 라는 의미)2인칭 수동태로서 거룩으로 태어나라는 것이다. 스테파누스의 성경에 따르면 나는 거룩이니, 너희들은 거룩으로 태어나라(거듭나라)는 의미다

17 καὶ εἰ πατέρα ἐπικαλεῖσθε τὸν ἀπροσωπολήμπτως κρίνοντα κατὰ τὸ ἑκάστου ἔργον, ἐν φόβῳ τὸν τῆς παροικίας ὑμῶν χρόνον ἀναστράφητε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개역개정)

『너희가 각 사람의 사역대로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너희 자신을 행하라』(헬라어 번역성경)

사역은 세상에서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의미한다. 나그네는 인생이 나그네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들어왔으므로 나그네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만일 돌아가지 못한다면,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하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두 죽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18-19 εἰδότες ὅτι οὐ φθαρτοῖς, ἀργυρίῳ ἢ χρυσίῳ, ἐλυτρώθητε ἐκ τῆς ματαίας ὑμῶν ἀναστροφῆς πατροπαραδότου ἀλλὰ τιμίῳ αἵματι ὡς ἀμνοῦ ἀμώμου καὶ ἀσπίλου Χριστοῦ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개역개정)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던 헛된 삶의 방식으로 부터 속량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로서 흠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헛된 삶의 방식이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하는데, 율법주의에 빠져서, 율법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헛된 사역인 것이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영원한 대속을 받았을 것이다. 그 대속은 피의 대가를 통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속량하신 것이다.

보배로운 피는 생명이다.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서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말씀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므로 모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대가를 치르므로(순종하므로), 사탄에게 붙잡혀 있던 자에게 자유를 주고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20-21 προεγνωσμένου μὲν πρὸ καταβολῆς κόσμου, φανερωθέντος δὲ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χρόνων δι’ ὑμᾶς τοὺς δι’ αὐτοῦ πιστοὺς εἰς θεὸν τὸν ἐγείραντα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καὶ δόξαν αὐτῷ δόντα, ὥστε τὴν πίστιν ὑμῶν καὶ ἐλπίδα εἶναι εἰς θεόν.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개역개정)

『참으로 그 분께서는 창세 전에 미리 정해졌으되 지난 그 때에 너희를 위하여 드러나셨으며 그 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너희는 그 분을 통하여 믿으니 이것은 너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말세라고 번역된 크로논(χρόνων)은 예수님의 초림을 의미한다.『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 되나,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너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것이다. 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예정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옷을 벗기고, 그 영들이 흙속에 가두어서 인간이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스스로 의를 이룰 자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가려는 자를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유가 탕자의 비유다. 누가복음 15 11-32절에서 탕자의 비유를 설명하신다. 탕자는 자기의 분깃을 아버지께 요구했다. 이는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상징한다. 먼나라는 이 세상을 의미하며, 방탕한 생활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모습이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의 열매에서 돼지는 율법을 지키는 자를 의미하며, 쥐엄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같은 개념이다. 바로 율법이다. 헬라어 원어에는 쥐엄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껍질로 되어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속에는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는데, 껍질만 먹는 것이다. 즉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 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5 21절에서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를 측은히 여기시는 것이다.

22 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 ἡγνικότες ἐν τῇ ὑπακοῇ τῆς ἀληθείας εἰς φιλαδελφίαν ἀνυπόκριτον ἐκ καθαρᾶς καρδίας ἀλλήλους ἀγαπήσατε ἐκτενῶς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개역개정)

『너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형제들을 거짓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헬라어 번역성경)

테 휘파코에 테스 알레데이아스 πακο τς ληθείας)는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순종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혼(ψυχς soul)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혼이 깨끗하게 되고, 영이 살아나므로, 거짓이 없으며, 형제의 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형제 사랑이다.

23ἀναγεγεννημένοι οὐκ ἐκ σπορᾶς φθαρτῆς ἀλλ’ ἀφθάρτου διὰ λόγου ζῶντος θεοῦ καὶ μένοντος.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개역개정)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항상있으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말씀으로 된 씨는 그리스도이다. 디아 로구 존토스 데오(δι λόγου ζντος Θεο 하나님의 살아있는 로고스를 통해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24-25 διότι πᾶσα σὰρξ ὡς χόρτος καὶ πᾶσα δόξα αὐτῆς ὡς ἄνθος χόρτου· ἐξηράνθη ὁ χόρτος καὶ τὸ ἄνθος ἐξέπεσεν·τὸ δὲ ῥῆμα κυρίου μένε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οῦτο δέ ἐστιν τὸ ῥῆμα τὸ εὐαγγελισθὲν εἰς ὑμᾶς.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개역개정)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지속되나니 이것이 바로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육체는 육체로 비롯된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를 의미한다. 이들은 헛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만 영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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